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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백제문화의 터전 부여!

부여군향토문화유산

부여 월함지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11번지 외 43필지
  • 지정번호 : 부여군향토유적 제67호 (지정일2004.12.22)
  • 문의처 : 문화재사업소(041-830-2625)
상세정보

지형상 왕도 동편인 이곳은 삼충사-남령을 있는 구릉 동편에 해당되고 전래명칭으로는 거무내, 뒷개, 사근다리, 즉 금성산 북쪽, 부소산 남쪽 동편의 물이 모이는 곳이다.
이 못이 나성의 안쪽에만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확실하지 않다. 이곳으로 유입되는 물은 부여 시내 동편의 물 이외에 청마산성 안쪽 독쟁이에서 석목리 노은절로 흐르는 물이 동쪽 나성을 따라 이곳 여산방죽에서 왕도 안의 물과 만나게 되는데 이 청마산성에서 내려오는 수량이 시내에서 흐르는 물 보다 더욱 많다. 궁남지에서와 같이 동 나성의 저지를 완전하게 축성하였는지 그렇지 않으면 궁남지에서와 같이 못으로 처리 하였는지는 좀더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 이 못은 청산성의 남쪽에 위치하는데 그 면적이 궁남지 보다 더 넓었던 것으로 추정 할 수가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 “백제왕이 대지(大池)에서 비빈들과 놀았다”란 기록의 큰못을 궁남지로 추정하는 분들이 있는데 1960년대 농지화 작업을 하기 이전에는 이곳의 못이 가증천과 연결되어 여삼방죽이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여 전기 기록에 보이는 대지가 이곳이 아닐까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여삼방죽이란 이름은 청산성 아래 지금의 골프연습장 부근에 여산정(麗山亭)이란 루정(樓亭)이 있어 여산정이 있는 못이라 하여 여산방죽이라 불리던 것이 발음의 쉬운소리화의 경향 때문에 여삼방죽이 된 것으로 보인다.
북나성 동쪽 끝에 동나성과 연결되는 곳에 청산성이 있는데 조선조의 지리지에는 석축성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현재 축성 석재가 모두 없어지고 토축만 남아있다. 이 성은 무왕대에 축성된 각산성(角山城)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부여의 나성은 성왕대에 완성된 것이 아니고 사비 왕도에 거주하던 여러 왕들의 손을 거치면서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시는길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11번지외 43필지
안내소 기준 버스, 승용차 이용시 10분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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