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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백제문화의 터전 부여!

절터로 떠나는 여행

절터로 떠나는 여행

코스간략보기
  • 1 정림사지 1.3km
  • 2 동남리사지 0.9km
  • 3 군수리사지 8.8km
  • 4 임강사지 5.4km
  • 5 능산리사지
  • 6 호암사지 6.5km 6.5km
  • 7 왕흥사지
정림사지
  • 주소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
  • 지정번호 : 사적 제301호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538-660)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다. 발굴조사 때 강당터에서 나온 기와조각 중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 라는 글이 발견되었다. 태평팔년은 요(遼)의 연호(年號)이며 고려 현종 19년(1028년)에 해당된다. 이 문자와의 발견수는 이곳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 중에 가장 수량이 많았으며 고려 재건시의 정림사를 대표할 수 있는 유물이다.

동남리사지
동남리사지
  • 주소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11-1
  • 지정번호 : 시도기념물 제50호

절의 이름이나 유래가 전해지지 않는 백제시대의 폐사지(廢寺址)이다. 1938년 절터 일부가 발굴, 조사되었다. 가람(伽藍)의 배치 방식은 남북 일직선을 중심으로 하여 중문(中門)·금당(金堂)·강당(講堂)이 있었고 회랑(回廊)이 중문에서 강당으로 이어져 있었다. 중문에서 금당, 금당에서 강당, 금당에서 회랑까지의 거리는 각각 21.2m이다. 절의 부지는 약 4,960㎡로, 조사 당시에 길이 28m의 배수구(排水口)와 수조(水槽) 2개가 발견되었다. 그밖에 납석제(蠟石製) 불상 조각과 와제(瓦製) 광배(光背) 조각, 동제(銅製) 금구 조각, 동제 불상 조각 등 다양한 토기와 기와가 출토되었다.

군수리사지
  • 주소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 19-1
  • 지정번호 : 사적 제44호

부여 군수리에 자리하고 있는 백제의 절터로,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1935년 일본 사람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그 결과 중문, 목탑, 금당, 강당 이 남북으로 일직선 상에 배치된 1탑 1금당의 구조임이 밝혀졌다. 백제 사찰에서의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는 이 절터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는데, 이후 계속된 조사를 통해서 백제의 기본적인 가람배치로 알려졌다. 금당터의 기단은 기와를 쌓아 만든 것이 특징이며, 유물은 절터에서 골고루 출토되었다.

임강사지
  • 주소 : 충남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 51
  • 지정번호 : 시도기념물 제34호

절의 이름이나 유래에 대한 문헌이 없는 백제시대의 폐사지로, 부여읍의 동남쪽 현북리 임강마을의 금강변에 있다. 절의 위치는 산봉우리 중앙부분으로, 주변보다 약간 높은 평탄한 곳이다. 현재 임강마을은 민가가 몇몇 있을 뿐 한적한 곳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역원(驛院) 임강원이 있을 정도로 부여에서 석성, 논산, 강경 방면으로 가는 임강재로 교통상 중요한 길목이었으며, 1981년 임강사지 동쪽에서 약 100m 떨어진 산기슭에서 백제시대 와요지와 조선시대 분청사기 와요지가 확인되었다.

능산리사지
  • 주소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외
  • 지정번호 : 사적 제434호

부여 능산리사지는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면서 조성한 왕실사찰의 절터로서 일명 ‘능사(陵寺)’로도 불린다. 2001년 9월 29일 사적 제434호로 지정되었다. 능산리사지는 사비 도성의 외곽을 둘러싼 나성(사적 제58호)과 능산리고분군(사적 제14호) 사이의 골짜기에 위치한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백제 왕릉군으로 널리 알려진 인근의 능산리고분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비기 백제 국왕들의 무덤이 능산리사지 곁에 조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능사는 그들의 명복을 빌었던 기원사찰〔願刹〕로 이해된다. 1993년에 진행한 2차 발굴조사에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가 출토되었으며, 1995년 4차 발굴조사에서는 목탑지 심초석 하부에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百濟昌王銘石造舍利龕: 국보 제288호)이 발견되었다. 여기에서 확인된 명문을 통하여 백제 창왕 13년(567)에 왕실 주도하에 사찰이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호암사지
  • 주소 : 충남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 156-2 외
  • 지정번호 : 시도기념물 제32호

≪삼국유사≫ 남부여조(南扶餘條)에 “호암사에는 정사암(政事巖)이란 바위가 있어 나라에서 재상을 선출할 때 3, 4인의 이름을 적어 함봉(函封)하여 바위 위에 두었다가 얼마 후에 개봉하여 그 이름 위에 도장이 찍혀 있는 자로 재상을 삼았으므로 이런 이유에서 정사암이란 이름이 생겼다.”라는 기사가 있다. 호암사의 중심부로 추정되는 지역은 대부분 민가가 들어서 있어 정확한 건물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으나, 백제 때의 방형 및 원형 주초석(柱礎石)들이 부근 민가내에서 초석으로 사용되고 있다.

왕흥사지
  • 주소 :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 32-7 외
  • 지정번호 : 사적 제427호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절터.사적 제427호. 이곳은 백제 법왕 2년(600)에 창건된 왕흥사가 있던 자리로, 부소산 서북쪽 백마강 건너의 울성산성(蔚城山城) 남쪽 기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