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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백제문화의 터전 부여!

역사적의의

백제의 수도! 부여

백제문화단지

부여라 하면 한국 국민의 80% 이상이 백제의 수도였던 곳임을 알고 있다. 중학교 이상을 졸업한 사람이면 부여는 금강의 하류에 있는 충남의 군 소재지로 알고 있을 정도로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다. 우리나라의 250여개가 넘는 시·군 중 100여 년 이상 한 나라의 수도였던 곳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이다.

전국의 관광객이 부여를 찾아와 낙화암을 보고, 국립부여박물관을 보고 간 사람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이처럼 잘 알려진 백제의 마지막 수도가 당나라 군대에 의하여 멸망되었다는 사실도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부여는 백제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명칭이 바뀌지 않은 오랜 군으로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라의 수도 계림은 신라가 멸망한 후 경주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지만 부여의 명칭은 백제시대 이래 그대로 지금까지 군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부여라는 나라는 우리 나라에서 고조선 다음으로 가장 오래 전에 세워져 4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이다. 결국 고구려에 통합되어 그 역사를 잃어버린 나라의 하나이다. 이 부여에서 금와왕이 동쪽으로 옮겨와 지금 길림성 연길 지방에 동부여가 되었고, 그 일부가 다시 내려와 졸본성에서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그리고 그 지배층 일부가 다시 한강 남쪽으로 내려와 백제를 건국하였고, 백제는 한강유역의 위례성에서 고구려의 팽창정책에 밀려 공주로 천도하였다. 무령왕이 중흥을 이룩하기 위하여 천도의 계획을 하였고, 그 아들 성왕대에 수도를 부여로 옮겼다

부여는 공주와 함께 백제문화의 흔적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좋은 의미에서 부여는 완성된 백제의 문화모습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백제 패망의 아픔도 고스란히 전해 준다. 부여에는 왕궁지와 수많은 불교유적들, 왕릉유적, 그리고 부소산과 궁남지 등 발전했던 백제문화가 밀집되어 있다. 그리하여 부여시대 백제로부터 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았던 일본인 관광객들이 자기들의 문화 원류를 보기 위해 줄을 이어 찾아든다.

그러나 이곳에는 이같이 화려한 백제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낙화암의 백제여인들이나 황산벌에서 산화한 한 맺힌 백제최후를 지킨 영령들의 숨결도 함께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당연합군의 말발굽아래 무참히 도륙 당하고 치욕적인 굴복을 겪어야 했던 백제 최후의 현장인 부여.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부소산에 올라 백마강을 바라보며 백제의 애환을 노래한다.

공주로 천도한 뒤 계속 불안했던 백제왕실은 무령왕과 성왕대에 이르러 어느 정도 원상을 회복, 보다 강성한 왕국 건설의 웅지를 가지고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천도하였다. 부여로 천도한 백제는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고, 호남평야지대의 경제기반과 진취적인 대외 활동을 통해 이 같은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다.

그리하여 백제역사상 부여시대(538~660년) 123년은 백제문화의 최전성기를 구가하였을 뿐아니라 삼국문화중 최고의 예술혼을 피우게 되었던 곳이다. 또한, 일본고대문화 형성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곳으로 이곳 부여에서는 백제의 역사문화를 찾기 어려워도 일본 지방에서 백제의 아름다운 문화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대외 영향력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