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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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리

백제때는 대산현에, 통일신라시대때는 한산현에 속했었다.
조선시대 말기엔 홍산군 해안면지역으로 1914년 군폐합에 따라 행촌, 신성리, 독성리, 지경리, 동쌍리, 침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구봉리의 큰산인 봉황산의 이름을 따서 구봉리라 하였다.
1985년 청동기시대 유적인 돌칼, 청동검, 주먹도끼등이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죽절리

긴 장대같이 뻗어 내린 봉황산 줄기에 촌락을 형성하고 있으며 봉황이라는 새가 영조로써 죽실대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고 벽오동이 아니면 깃들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죽절리라 했다 한다.
600년경 백제 말기에 축조한 성터가 현재까지 일부 남아 있기도 한다.
조선말기에 홍산군 해안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서쌍리, 산막리, 동쌍리, 일부를 병합하여 죽절리라 하였다.

주정리

마을이 형성은 백제 이후라고 하나, 1600년경 조선 중엽 한산이씨가 배매라는 곳에 설촌 하였다고 전해지며 이때부터 집성촌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홍산군 해안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개혁때 배매, 작교, 침산, 망정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배매와 망정의 이름을 따서 주정리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른다.

현암리

동쪽으로 멀리 바다가 보인다는 해발344m의 우뚝 솟은 망진산 아래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백제 멸망후 백제의 충신들이 이 산골짜기에 들어와 숯을 굽기도 하면서 한을 달래며 연명하였다고 하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망동, 망중, 망서, 곤유리를 통합하였으며, 마을 중심부에 검은 바위가 있다 하여 현암리라 개칭하였다.
부여군에서 밤나무재배를 시작한 오래된 마을이며, 봄에는 밤꽃이 온 산을 뒤덮어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으며, 특산물로는 대부분 농가에서 재배하고 있는 밤 이 있다.

태양리

구룡면의 소재지로서 일력 또는 장승백이라고도 부르는데 옛날 한 풍수지리 학자가 이곳을 지나다 풍수를 보니 태양의 혈이 쏟아지는 명당자리라 하였다 하여 그 후로 일력이라 칭하였고 마을안에 장승이 있어 장승백이라고 하였다 한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홍산군 해안면 지역으로 일력 또는 태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일력을 태양1리, 작교와 망정 일부를 병합하여 태양2리라 하였다.

금사리

소재지로부터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내산면과 홍산면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고, 구룡천이 금사리의 북쪽에서 흘러 서쪽으로 마을을 휘돌아 동으로 흐르고 있는, 사람이 살기에 여건이 아주 좋은 마을이다.
백제때는 대산현에 속했으며 신라때는 한산현에 속했고, 고려때는 홍산현에 속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금동리와 소사동, 대사동,신기리,용암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금동과 대사동의 이름을 따서 금사리라 하였다.
19세기초 천주교인 금사리 성당이 금사1리에 건립되어 새로운 종교의 요람지로 등장한 지역이며, 지금도 금사리의 인구 대부분이 천주교인이다.

논티리

구룡평이 마치 넓은 바다처럼 들 바다를 이루는 그 가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다.
백제때는 대산현에 속했으며 신라때는 한산현에 속했고, 고려때는 홍산현의 지역이었다.
백제때 홍산과 부여를 왕래하는 길이 있었으며, 그 길이 논티라고 전해온다.
조선시대 말기에 홍산군 해안면으로 논티 고개밑을 논티라 하고, 금양의 서쪽마을이라해서 금서리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개혁때 논티리라 칭하고, 서부를 논티1리, 동부를 논티2리라 하였다.
마을 특산물로는 시설딸기가 유명하다.

동방리

구룡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 ~ 3km 지점에 위치한 부락으로 옥산면 음양산에서 발원하여 흘러오는 금천이 큰 냇물로 변하는 지역에 위치한다.
1650년경 조선중엽에 밀양박씨가 입촌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하며, 이어 광산김씨와 풍천임씨가 정착하여 농경지를 조성하면서 큰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른다.
당시 마을앞에는 큰 강이 흘러 배가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왜침이 잦았다고 한다.
행정구역 개혁때 동촌과 방계의 이름을 따서 동방리라 하고, 동촌을 동방1리 방계를 동방2리라고 하였다.
마을 특산물로는 구룡평야에서 생산되는 쌀과, 딸기, 수박등이 있다.

죽교리

구룡면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약 2km지점에 위치한 마을으로 9%만이 임야인 야산이고, 91%가 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1800년경 연안이씨가 입촌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며 이어 광산김씨가 정착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웠다 한다.
1914년 행정정구역 개혁때 송죽리와 내당리 석교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송죽과 석교의 이름을 따서 죽교리라 하였고, 송죽을 죽교1리, 상곡을 죽교2리라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마을 특산물로는 구룡평야에서 재배하는 시설딸기가 유명한 마을이다.

용당리

구룡면의 남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 고려때는 홍산현의 지역이었다.
고려시대 초기에 왕씨가 정착하여 부를 누렸다고 전해지며, 조선초기 광산김씨, 경주김씨등이 입촌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말기에는 홍산군 상동면의 지역으로 앞에 용못이 있고, 그 옆에 할미당이 있어 용당, 또는 고당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부두리, 외당리, 내당리, 장등일부를 병합하여 용당리라 하였다.
마을 특산물로는 구룡평야에서 생산되는 쌀과, 수박, 시설딸기등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