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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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정

상세정보
  • 구분 : 충남문화재자료
  • 지정번호 : 제100호
  • 지정일 : 1984년 05월 17일
  •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147-2
문화재 소개

조선 광해군(1608∼1623) 때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1557∼1623)이 이곳에 와 살면서 지은 정자로 이름은 김흥국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신흠이 쓴 팔경시판(八景詩板)이 걸려 있다. 부여 백마강변의 자온대 위쪽에 서 있으며, 부여 팔경의 하나로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

부산동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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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분 : 충남문화재자료
  • 지정번호 : 제122호
  • 지정일 : 1984년 05월 17일
  • 소재지 : 규암면 진변리
문화재 소개

부산(浮山) 남쪽 기슭에 자리한 부산서원(浮山書院) 입구 왼쪽에서 자라며 〈부여동매(扶餘冬梅)〉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동매는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1585∼1657)가 명나라에 수신사로 갔을 때 3그루를 가져다 심은 것이다. 2그루는 말라죽고 1그루만 남아 있는데 수령은 50년으로 추정된다.

금암리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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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분 : 충남문화재자료
  • 지정번호 : 제88호
  • 지정일 : 1984년 05월 17일
  • 소재지 : 규암면 서궁로169번길 33-12
문화재 소개

금새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집터를 다지던 중 탑의 부분석재가 발견되어 복원해 놓은 것이다. 마을 이름은 ‘금사(金寺)’라는 절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하며, 공사 당시 금동으로 만든 불상의 일부분이 함께 발견되어 이 일대가 절터였음을 뒷받침해준다.

탑은 동그란 판돌 위로 탑의 몸돌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위로 5개의 지붕돌을 차례로 쌓아 올린 모습이다. 둥근 판돌이 이 탑의 기단(基壇)역할을 하는 듯 하나, 원래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나만 남아있는 탑신의 몸돌은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각층에 3단의 받침이 있다. 특히 5층 옥개석의 받침은 3단이긴 하지만 가장 하단은 굉장히 퇴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지붕돌의 밑받침을 3단으로 두거나, 3층 이상은 전혀 두지 않는 등 불규칙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시대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민입암집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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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분 : 충남문화재자료
  • 지정번호 : 제341호
  • 지정일 : 1995년 10월 07일
  • 소재지 : 규암면 모리 290
문화재 소개

목판은 총 135매이며, 규암면 모리의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다. 여흥민씨(驪興閔氏) 종중에서 소유하고 관리한다.

조선시대의 문신이며 명종 즉위 초에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책록된 입암 민제인(閔齊仁)의 시문집 《입암집》 책판이다. 목판이며,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둘째아들인 민사안(閔思安)이 초판을 새겼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고, 인쇄본도 전해지지 않는다. 1610년(광해군 2)에 손자 민여임(閔汝任)이 흥해군수(興海郡守)로 있을 때 다시 판각하고 간행하였다. 1669년(현종 10)에 5대손 민저동(閔著童)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송시열(宋時烈)이 쓴 신도비문을 부록으로 추가하고 다시 간행하였다.

1736년(영조 12)에 7대손 민응수(閔應洙)가 누락된 시문 및 정사(正史), 을사사화 전후 민제인의 행적과 사화에 관계된 자료들을 수집하여 간행하였다.

부여 증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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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분 : 사적
  • 지정번호 : 제156호
  • 지정일 : 1967년 3월 25일
  • 소재지 : 규암면 신성리 산86
문화재 소개

사적 제156호. 면적 8,858평. 성 둘레 500∼600m, 높이 약 2∼3m. 부여에서 북쪽으로 금강을 건너 약 4km 떨어진 산 위에 '시루테'를 두른 것처럼 보이는 성으로, 성 북쪽에 북문지(北門址)가 있다. 문지 너비는 4.3m이다.

성의 동벽은 붕괴가 심하여 남아 있는 부분이 없고, 성문은 북문 외에 동남방과 서쪽에 자리가 남아 있으며, 수구문(水口門)도 동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무너져 알 수가 없다. 성 남벽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성내 동쪽에 우물터가 있으며, 백제 수도를 수호하기 위한 북방의 외곽성으로 알려져 있다.

부여 왕흥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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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분 : 사적
  • 지정번호 : 제427호
  • 지정일 : 2001년 2월 5일
  • 소재지 : 규암면 신리 37-2
문화재 소개

부여 왕흥사지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문화에 창건(법왕 2년, 600)과 낙성(무왕 35년, 634) 관련 기사가 수록되어 있는 백제시대의 중요한 사찰유적으로 1934년 충남 부여군 신리 일대에서 왕흥명(王興銘) 기와편이 수습되어 신고됨에 따라 이 지역을 ‘왕흥사’의 위치로 비정하였다. 이후 왕흥사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1982년에 충청남도 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에 사적 제427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는 2000년부터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2010년 현재 11차 발굴조사를 시행중에 있으며 발굴조사 결과 목탑지, 금당지를 비롯하여 동,서회랑 및 동,서건물지, 강당지 및 서편부속건물지 등 사역 중심부의 건물지들을 확인하였으며 사역의 축대인 동서석축, 진입시설인 남북석축과 사역 동편 외곽의 백제~고려시대 기와가마터가 확인되었다.

2007년 제8차 발굴조사 중 사리공 내부에서 금제사리병, 은제사리호, 청동사리합의 3중구조로 안치된 사리기가 출토되었다. 청동사리합 동체 외면에는 상·하 양단에 2줄의 음각선을 돌리고 그 안으로 5자 6행 29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었으며 그 내용은 “丁酉年(577) 2월 15일 백제왕 창(昌)이 죽은 왕자를 위해 탑(또는 사찰)을 세우고 본래 사리 2매를 묻었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왕흥사의 창건과 관련된 내용으로 문헌기록과 차이를 보여 왕흥사 창건시기를 밝히고 나아가 문헌 속 백제사에 대한 재검토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부산각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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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 지정번호 : 제47호
  • 지정일 : 1976년 1월 8일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규암면 진변로 142-1
문화재 소개

부여군 백마강가 암벽에 새긴 글씨로,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경여(1585∼1657 ) 선생의 의지를 후손에 알리고자 쓴 것이다.

조선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내던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 8년(1657)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이완·송시열과 함께 청나라를 쳐야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왕은 ‘경의 뜻이 타당하고 마땅하지만 진실로 마음이 아프나 뜻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늦다’라는 답장을 내렸는데, 청나라에서 그를 벼슬에서 물러나게 하도록 간섭하여, 결국 그는 부여로 낙향하였다.

그 후 우암 송시열이 이 내용을 여덟 자로 써서 후손에게 전하였고, 숙종 26년(1700) 그의 손자 이명이 그 글을 바위에 새긴 후, 바위 위에 건물을 세워 ‘대재각(大哉閣)’이라 하였다.

호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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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분 : 충청남도 기념물
  • 지정번호 : 제32호
  • 지정일 : 1982년 8월 3일
  • 소재지 : 규암면 호암리 156-2번지
문화재 소개

호암사는 백제 때 지어진 절이라 하나 언제, 누구에 의해 지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고 절 옆의 바위에 호랑이 발자국이 남아있어 호암사라 불리운다.

절터는 민가가 들어서 정확한 옛 모습을 알 수 없고, 현재 존재하는 호암사는 최근에 지은 사찰로 법당을 비롯하여 요사채, 산신각 등이 있다.

호암사터는 백제의 많은 절터 중에서 그 이름과 유래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천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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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분 : 충청남도 기념물
  • 지정번호 : 제49호
  • 지정일 : 1984년 7월 26일
  • 소재지 : 규암면 호암리 산5
문화재 소개

백제 때에 재상을 선출하던 곳이다.

고대에서부터 신성시 해온 성스러운 곳으로, 부소산 취령봉 꼭대기의 범바위(호암)라 부르는 넓적한 암반, 근처 절벽 아래에 있는 임금바위, 신하바위라 부르는 바위가 솟아 있는 이 일대를 천정대라 칭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천정대를 ‘정사암(政事岩)’이라 불렀는데, 이는 나라에서 재상을 뽑을 때, 3∼4명의 후보 이름을 적어 상자 안에 넣어두고 며칠 후 열어보아 이름 위에 도장이 찍힌 사람을 재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임금바위, 신하바위 위에서는 임금과 신하가 각각 하늘에 제를 올리고 기원했다는 전설도 같이 전하고 있다.

백제문화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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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374
관광지 소개

삼국문화의 한 축으로서 우리민족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을뿐 아니라 고대 동방문화의 중심으로써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백제역사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1994년부터 2010년까지 총 17년간 충청남도 부여군 합정리 일원 3,276천㎡에 백제왕궁인 사비성, 백제의 대표적 사찰인 능사, 계층별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 백제 개국초기의 궁성인 위례성, 백제의 대표적 고분을 보여주는 고분공원, 충남도민의 기증으로 조성된 백제 숲, 백제역사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최초의 백제사 전문박물관인 백제역사문화관이 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