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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그리워하던 파진산

  • 작성자최중호
  • 작성일2019-05-27 11:50:37
  • 조회수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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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그리워하던 파진산

어렸을 적 꿈이 이젠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시절엔 그 산의 이름이 교가에도 있어 학교 행사 때마다 불렀다. 또한 우리 집이 동향집이라서 날마다 그 산을 볼 수 있었다. 그 산은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에 있는 파진산(破陣山)이다. 백제 멸망의 슬픈 전설을 간직한 채, 휘 돌아가는 백마강에 산자락을 적시며 흐느껴 울던 산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 산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 산은 근방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경사가 심해서 쉽게 오를 수 없는 산이라고 소문이 났었다. 게다가 산이 강 건너에 있기 때문에 가보지 못하고 바라만 보던 신비로운 산이었다. 우리 동네에선 그 산에 가 봤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 언젠가는 그 산에 꼭 한번 가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드디어, 오늘 60여 년간을 별러왔던 파진산에 가보기로 하였다. 높고 수려해서 이름난 산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부터 가보고 싶었던 산이라서 마음이 설렜다.

처음 가는 산이라 위험을 대비해 친구들과 함께 나섰다. 우리는 석성면 현내 2리에 있는 평화교회 쪽으로 올라갔다. 가파른 길을 숨을 몰아쉬며 15분 정도 오르니 산 정상에 도착했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파진산에 올라온 것이다. 정상은 평편했다. 먼저 내가 살던 장암면 장하리 쪽을 바라봤으나 큰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가리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백마강 하류 쪽은 앞이 확 트여 논산과 강경, 임천 방향은 시원하리만큼 잘 보였다.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 그 양옆으로 너른 들이 펼쳐져 있고 그 끝에 높고 낮은 산이 솟아 있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가 살던 고향은 보이지 않아 산 정상에 아쉬움 한 자락을 남겨두고 내려왔다.

이곳에 온 김에 파진산 능선에 있는 석성산성(石城山城)에도 가보기로 하였다. 석성산성으로 가는 길가에 탑골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백제무명용사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먼 옛날 석성산성에서 주둔하던 백제 병사들은 나·당 연합군을 맞아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쳐 싸웠을 것이다. 병사들의 피맺힌 절규와 처절한 몸부림도 많은 적을 막아내기엔 중과부적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목숨을 바쳐 석성산성을 지키려 했지만 성은 함락되고 사비성마저 적에게 빼앗기니, 그 영혼들은 눈물을 흘리며 허물어진 산성 주변을 맴돌고 있으리라.

다행히 그들의 충정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석성산성 수호 백제무명용사 충혼비’를 세워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었다.

마을 안쪽에 산성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곳에서 산 중턱까지는 자동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었다. 산언덕엔 많은 돌무더기가 흩어져 있고, 일부는 돌을 쌓아 성을 복원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석성산성은 사적 제89호로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 남쪽을 방어했던 산성이다. 성 아래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정상으로 간다. 여기저기에 흩어진 돌무더기를 지나 정상인 옥녀봉에 올랐다. 이곳은 사방이 탁 트인 봉우리라서 시야가 넓고 앞이 시원하게 보인다. 파진산 정상에서 보지 못했던 나의 고향은 물론, 백마강 상류 쪽인 부여도 잘 보였다. 사방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조망할 수가 있었다. 여기서 아름다운 경치를 더 감상하고 싶었지만, 가보고 싶은 곳이 남아 있어 옥녀봉에서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백마강변에 있던 봉무정 나루터로 갔다. 이곳은 전에 장암면 하황리와 석성면 봉정리를 잇는 나루가 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루터는 흔적조차 없다. 다만, 추억을 그리워하는 나그네만이 짙은 향수(鄕愁)를 넋두리로 남기고 떠나가는 곳이 되었다.

어렸을 적 파진산은 경사가 심하고 산 아래로 강물이 흘러 사람들이 쉽게 다니지 못했는데, 지금은 자전거 종주길이 생겼다. 길을 따라 강의 상류 쪽으로 가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파진산 자락에 숨겨져 있다니….

길 왼쪽으로 강물이 흐르고 오른쪽으론 산의 절벽이다. 포장된 길을 자동차로 조금 가니 봉정리 취수장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데크길이라서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걷거나 자전거로만 갈 수 있는 길이다.

중국의 천문산 귀곡잔도에선 아래가 천 길 낭떠러지라서 오금이 저렸는데, 여기 데크길 아래엔 시퍼런 강물이 흐르고 있어 가슴을 조인다. 산 절벽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가 데크길 위로 아취를 그리며 강 쪽으로 향했다. 이 길은 전율을 느끼며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환상의 길이다.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에 취해 한동안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데크길이 끝나고 현북 양수장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부여 쪽으로 가는 자동차 길이다.

백마강 상류 쪽을 바라본다. 강 가운데에 자연스레 만들어진 작은 섬들이 있어, 또 다른 경관이다. 강물 위에 나무와 억새 그림자가 비치고, 작은 섬들 사이로 청둥오리들이 평화롭게 유영을 한다. 강은 맑아 거울 같은데 작은 섬에서 자란 나무와 억새가 바람과 어우러져 춤을 춘다. 여기 물 위에 비친 그림자는 어느 솜씨 좋은 화가가 그린 뛰어난 그림이 아니던가?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경치가 좋은 곳은 본래 주인이 없다’고 하였다. 내가 이곳의 주인이 된 것 같다.

무릉도원이 따로 있다던가. 이곳이 바로 선경(仙境)이요 무릉도원이 아닌가. 한동안 넋을 잃고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았다. 파진산 자락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멋진 풍광을 바라보며, 오늘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앞을 바라보았다. 바로 강 건너가 나의 고향이다. 지척이라서 가보고 싶었지만, 강물이 앞을 막아 가지 못한다. 산이 강을 건너지 못하듯 나도 강을 건너지 못했다.

(2019. 월간문학. 6월호)

최중호

수필가. 충남 부여 출생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대전.충남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수필춘추 문학상, 대전문학상, 한국수필문학상, 박종화문학상 수상
수필집 : 문화유적 테마에세이 "장경각에 핀 연꽃"